홍귀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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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귀달(洪貴達, 1438년 ~ 1504년)은 조선의 문신이다. 본관은 부계(缶溪). 자는 겸선(兼善), 호는 허백당(虛白堂)·함허정(涵虛亭)이다.[1]
생애
[편집]1460년(세조 7)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충청도관찰사, 형조참판, 이조참판, 경주부윤, 대사성, 지중추부사, 대제학, 대사헌, 우참찬, 이조판서, 호조판서,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498년(연산군 4년) 의정부 좌참찬(議政府左參贊)이 되었다.[2] 무오사화 때 연산군에게 잘못된 정치를 고치도록 간언해서 좌천되었다.
1500년 지중추부사(知中樞府事)로서 『역대명감(歷代名鑑)』을 찬술하였다.[3] 이어 경기도관찰사로 재직 중 1504년 손녀를 예궐(詣闕)하라는 연산군의 명에 병이 있다는 이유로 거역해 장형(杖刑)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되던 중 단천에서 교살되었다.[4]
중종반정 후 신원(伸寃)되었다. 시호는 문광(文匡)이다.
가족
[편집]- 증조부 : 홍순(洪淳) - 사재감정
저서
[편집]- 『허백정문집(虛白亭文集)』
문화재
[편집]1535년(중종 30년)에 대제학을 지낸 남곤이 글을 짓고, 아들인 홍언국이 글씨를 써서 세운 홍귀달 선생 신도비(洪貴達 先生 神道碑)는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.